
승압제 사용의 두 가지 접근법: 적정(Titration) vs 고정(Fixed)
중환자실에서 쇼크 환자의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승압제(Pressor)는 대부분 '적정(Titration)'을 기본으로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으로, 환자의 혈압 반응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분당 주입 용량을 세밀하게 조절합니다. 하지만 바소프레신(Vasopressin)은 유독 0.03 U/min (혹은 0.01~0.04 U/min 범위)의 저용량으로 '고정'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약리학적 이유에 근거합니다. 바소프레신 고정 용량 사용의 핵심 이유 4가지를 설명해 드립니다.
1. '상대적 바소프레신 결핍'의 보충 (Physiologic Replacement)
패혈성 쇼크(Septic shock) 환자는 쇼크 초기 단계를 지나면 체내의 내인성 바소프레신(ADH)이 고갈되는 '상대적 바소프레신 결핍(Relative Vasopressin Deficiency)' 상태에 빠집니다. 이로 인해 혈관이 이완되고 혈압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이때 사용하는 바소프레신 고정 용량(0.03-0.04 U/min)은 부족해진 호르몬을 '생리적 수준으로 보충'하는 개념입니다. 이는 노르에피네프린처럼 수용체를 자극해 약리학적으로 혈관을 쥐어짜는(squeeze)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부족한 기본 재료를 채워 넣어 혈관의 정상적인 긴장도를 회복시키려는 목적이 큽니다.
2. 비선형적 용량-반응 곡선 (Non-linear Dose-Response)
노르에피네프린(알파-1 수용체)은 용량을 올리는 만큼 혈압 상승 반응이 비교적 비례하여 나타나므로 '적정'이 유용합니다. 하지만 바소프레신(V1 수용체)은 다릅니다. V1 수용체는 바소프레신 고정 용량으로 알려진 저용량 범위(0.04 U/min 이하)에서 이미 대부분 포화(saturation)됩니다. 따라서 이 용량을 초과하여 주입량을 늘려도 혈압 상승 효과는 그만큼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습니다. 즉, 용량을 올려도 효과는 미미하여 '적정'의 의미가 없습니다.
3. 심각한 허혈성 부작용 (High Risk of Ischemia)
이것이 바소프레신 고정 용량을 고수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바소프레신은 고용량(0.04 U/min 초과)으로 갈수록 혈압 상승 효과는 미미한 반면, 심각한 부작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 내장 허혈 (Splanchnic ischemia): 장으로 가는 혈관을 강력하게 수축시켜 장 괴사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 말초 허혈 (Digital ischemia): 손가락, 발가락 끝의 혈관을 수축시켜 괴사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 심근 허혈 (Myocardial ischemia): 관상동맥을 수축시켜 심근경색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끔찍한 부작용 때문에, 혈압을 더 올리기 위해 바소프레신 용량을 적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이득보다 실이 훨씬 큽니다.
4. '카테콜아민 보조'라는 명확한 역할 (Catecholamine-Sparing)
바소프레신은 단독 승압제가 아니라, 노르에피네프린과 함께 사용하는 '보조 승압제'로서의 역할이 명확합니다. 바소프레신 고정 용량을 투여하는 목적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 노르에피네프린만으로 목표 혈압(MAP) 달성이 어려울 때 이를 돕는 것.
- 혹은, 고용량의 노르에피네프린 사용량을 줄여(Sparing effect) 카테콜아민의 부작용(부정맥, 심근 부담)을 줄이는 것.
즉, 혈압 조절을 위한 '적정'의 역할은 노르에피네프린이 담당하고, 바소프레신은 바소프레신 고정 용량으로 투여되어 시스템의 기반을 받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핵심 비교: 노르에피네프린 vs 바소프레신
| 특성 | 노르에피네프린 (Norepinephrine) | 바소프레신 (Vasopressin) |
|---|---|---|
| 주 사용 목적 | 1차 승압제 (혈압 상승) | 보조 승압제 (결핍 보충, NE 용량 감소) |
| 용량 조절 | 적정 (Titration) (목표 혈압까지 증/감량) | 고정 (Fixed Dose) (예: 0.03 U/min) |
| 주 수용체 | 알파-1 (α1), 베타-1 (β1) | V1 (혈관 수축), V2 (항이뇨) |
| 용량 증량 시 | 혈압 상승 (비례적) / 부정맥 위험 | 혈압 상승 (미미) / 허혈성 부작용 (치명적) |
핵심 요약 Q&A
Q1: 바소프레신 용량을 0.04 U/min보다 높게 쓰는 경우는 절대 없나요?
A: 임상적으로 거의 없습니다. 패혈성 쇼크 가이드라인(Surviving Sepsis Campaign)에서도 0.03-0.04 U/min의 바소프레신 고정 용량을 권고합니다. 이보다 높은 용량은 심각한 허혈성 합병증 위험 때문에 이득이 없다고 간주됩니다.
Q2: 바소프레신은 언제 투여를 시작하나요?
A: 보통 1차 승압제인 노르에피네프린을 일정 용량(예: 0.25-0.5 mcg/kg/min) 이상 사용해도 목표 혈압(MAP 65mmHg)에 도달하지 못하는 '불응성 쇼크(Refractory shock)'일 때 보조 요법으로 추가합니다.
Q3: 바소프레신은 혈압만 올리나요? 다른 효과는 없나요?
A: 바소프레신은 '항이뇨 호르몬(ADH)'이기도 합니다. V2 수용체에 작용하여 신장에서 수분 재흡수를 촉진, 소변량을 줄이는 효과(항이뇨 작용)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약을 쓰면 소변량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Q4: 바소프레신 고정 용량이 0.03 U/min인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네, 여러 임상 연구(가장 유명한 것은 VASST 연구)에서 패혈성 쇼크 환자의 '상대적 결핍'을 보충하는 용량으로 0.03~0.04 U/min이 사용되었고, 이 용량에서 노르에피네프린 절감 효과와 안정성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Q5: 바소프레신을 중단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A: 환자의 혈압이 안정화되어 노르에피네프린 용량을 충분히 줄이게 되면, 바소프레신을 서서히 감량(tapering)하거나 중단합니다. 바소프레신 고정 용량으로 사용했더라도, 갑자기 중단하면 반동성 저혈압(rebound hypotension)이 발생할 수 있어 서서히 줄이는 것(예: 0.01 U/min씩 감량)이 권장됩니다.
참고 자료 (References)
1. Surviving Sepsis Campaign: International Guidelines for Management of Sepsis and Septic Shock 2021. (링크: SCCM Guidelines)
2. Russell, J. A., Walley, K. R., Singer, J., et al. (2008). Vasopressin versus Norepinephrine Infusion in Patients with Septic Shock (VASST).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358(9), 877–887. (링크: NEJM)
3. Dünser, M. W., & Hasibeder, W. R. (2009). The role of vasopressin in septic shock. Current Opinion in Critical Care, 15(4), 33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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